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 유니콘스 (문단 편집) == 개요 == [[KBO 리그]]에 소속이었던 프로 [[야구]]단. [[삼청태현]]의 역사를 마무리한 구단으로 네 곳 중에 가장 긴 역사를 기록했던 구단이자[* 현대라는 이름으로 12시즌을 보냈는데 3시즌 반을 치른 삼미, 2시즌 반을 치른 청보, 8시즌을 치른 태평양보다는 확실히 구단 역사가 길다. 다만 인천 연고팀으로 있었던 시간으로 한정하면 4시즌 뿐으로 태평양보다 짧다.]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전신들은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약체였지만 현대는 막강한 전력을 앞세워 프랜차이즈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팀으로 기록됐다.] 구단이었다.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 무연고[* 공식적으로는 서울특별시가 연고지이지만 모기업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기존 서울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게 권리금을 내지 못했고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 (비공식)[[경기도]] [[수원시]].[* 사실 당시 [[SK 와이번스]]가 현대로부터 인천 연고권을 양수하면서 경기도에 대한 연고지 권리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SK는 서울 입성 전까지 현대의 홈구장이 여의치 않은 만큼 서울 입성 전까지 쓰는 임시 연고지라는 명목으로 잠시 빌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현대 유니콘스가 재정난에 빠지게 되면서 서울 입성에 사실상 실패하게 됐고, 유니콘스측은 구단이 해체된 2008년까지 SK 측에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수원시]]에 눌러 앉아서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 현대 해체 이후에도 경기도 연고지 권리는 SK 와이번스가 가지고 있다가 2013년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wiz]]가 창단되면서 자연스럽게 넘겨주게 되었다.] 1996년 취임해 팀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 한 [[김용휘]] 단장[* 2000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전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사장이 되어서도 구단의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하 구단 [[프런트]]가 개념이 넘친 현장 지원으로 명성을 떨쳤고, 역대 감독은 [[김재박]]-[[김시진]]이었다. 팀의 상징동물은 [[유니콘]], 상징색은 녹색과 노란색.[* 공교롭게도 전신 구단 [[태평양 돌핀스]]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썼던 상징색과 같다. 응원 깃발의 색깔은 창단 당시부터 줄곧 녹색이었으나 막대풍선 색깔은 창단 초기에 다소 바뀌었다. 원래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썼으나 하필이면 이 당시 [[LG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도 노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게다가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쓰는 팀끼리 맞붙다보니 색깔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4차전에 붉은색 막대풍선을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가 먼저 노란색을 버리고 1997년부터 해체될 때까지 하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하얀색 막대풍선에는 [[범현대가]] 계열 기업의 로고나 제품의 명칭이 광고 형식으로 삽입됐다. 구단 초창기에는 [[현대전자]]의 PC였던 멀티캡이나 [[현대오일뱅크]]의 로고가 새겨졌고 이후에는 [[KB증권|현대증권]]이나 [[현대해상]] 로고가 써져있었다. 초록색을 상징색으로 삼던 팀이었지만 초록색 막대풍선은 창단 초창기 잠시 연두색 막대풍선을 쓴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하얀색 막대풍선 외에도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야구장]] 시대 초기 노란색 봉투에 초록색 글씨로 "막강현대"를 삽입한 비닐봉투를 응원도구로 쓰기도 했다. 비닐봉투 응원도구는 2008년 주황색 봉다리 열풍을 일으킨 [[롯데 자이언츠]]가 원조라고 다들 아는데 사실과 다르다. 비닐봉투 응원을 먼저 발명한 건 현대였다. 다만 현대의 해체 이후 히어로즈가 들어서지만 당시 응원단이고 팬이고 아예 현대를 부정하다시피 조용한 탓에 현대의 비닐봉지 응원은 사장됐다. 이후 베이징 올림픽 시절 기준으로 야빠들의 전성기가 들어설때 롯데가 이를 활용한 것이었다. 롯데가 사용한 비닐봉투는 흔히 편의점에서 주는 소형 비닐봉투 크기였고 현대의 비닐봉투는 크기가 조금 커서 어린이의 경우 봉지에 구멍을 뚫어서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해체 이후 인적 자원과 지명권은 [[키움 히어로즈|우리 히어로즈]]가 승계하였다. 역사는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부터 시작됐으며 현대 유니콘스로서의 역사만 따지면 [[1996년]] 창단, [[2008년]] 1월 해체된 팀이다. 연고지는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로 [[숭의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썼으나 [[1999년]] 시즌 종료 후 [[서울특별시]]로 [[현대 유니콘스/연고 이전|연고지 이전]]을 선언했지만 서울에 정착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결국 [[제2 홈구장]]으로 쓰던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 야구장]]을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빈집털이|임시 홈구장]]으로 썼다. 별명은 투수 왕국. [[태평양 돌핀스]] 후기 시절부터 좋은 투수진을 여럿 배출하던[* 사실 인천/경기팜은 전통적인 투수 강세 지역이다. 현대의 전신인 삼미 시절에는 [[임호균]]이라는 국가대표 투수가 있었고 청보 시절에는 [[최계훈]]이 에이스 역할을 했다. 투수왕국의 이미지는 태평양 시절에 들어서면서 극대화된다. 강력한 투수들이 대를 이어 배출됨에도 팀 전력이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강력한 투수력에 비해 야수들의 타력과 수비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투수진이 기를 쓰고 1실점만 해도 타자들이 점수를 아예 못 내서 1-0으로 경기를 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쉽게 말하자면 투타의 불균형이 매우 극심했던 팀이 [[삼청태|현대 이전까지 있었던 팀들]]의 전통적 팀컬러였다.] 이 팀의 팀컬러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김수경(야구)|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장원삼]] 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한 투수들이며 무려 4명의 투수신인왕을 배출했다. 1998년 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오재영]].[* 이동학의 사례에서 보듯 2003년은 두각을 나타낸 신인 자체가 보이지 않은 신인 흉년의 해였다. 또 다른 신인왕 후보라 해봐야 이택근이 있었는데 이택근도 신인왕을 받을 성적은 전혀 아니었다. [[조용준]]이 전성기는 짧았지만 한국시리즈 MVP를 받기도 했었고, [[오주원|오재영]]은 [[싸융짱문오]]에 포함될 정도가 되긴 했어도 불펜에서 잘 활약해주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쌍방울 레이더스]]와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해본 두 팀 중 한 팀이다.[*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 2패 이후 3승을 거두는 리버스 스윕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 삼성은 199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과 대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